[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이정록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새/이정록

입력 2018-11-15 22:22
수정 2018-11-1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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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 이정록

숫눈이 내렸구나

마당 좀 내다봐라

아직 녹지 않은 흰줄 보이지?

빨랫줄 그늘 자리다

저 빨랫줄에도 그늘이 있는 거다

바지랑대 그림자도 자두나무처럼 자랐구나

아기주먹만 한 흰 새 다섯 마리는 빨래집게 그림자구나

햇살 받으면 새도 날아가겠지 젖은 자리도 흔적 없겠지

저 흰 그늘, 혼자만 녹지 못하고 잠시 멈칫거리는 시린 것

가슴에 성에로 쌓이는 저 아린 것, 조런 실타래가 엉켜서

마음이 되는 거다. 빨래집게처럼 움켜잡으려던 이름도

마음처럼 묽어짐을 고삭부리* 되고서야 깨닫는구나

그리움도 설움도 다 녹는 거구나 저리고 아린 가슴팍이

눈송이로 뭉친 새의 둥우리였구나

깃털 하나 남지 않은 마당 좀 보아라

약봉지 같은 햇살 좀 봐라

*고삭부리 : 몸이 약해 늘 병치레하는 사람

-

1995년 한 해 세 번의 첫눈을 만났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모스크바에 들어왔다. 지상의 고통을 다 경험했을 것이다. 볼쇼이극장에서 발레 백조의 호수를 보았다. 우아한 선율 속에 펼쳐지는 순백의 이미지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발레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밤하늘에서 첫눈이 내렸다. 모스코비치들이 두 손을 들고 ‘우라!’(만세)라고 외쳤다. 모스크바에서 보름을 지내고 이스탄불로 갔다. 보스포루스해협에서 외로운 갈매기들과 놀고 있을 때 첫눈이 왔다. 기념품 가게 여종업원들이 손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첫눈은 사람들의 웃는 얼굴 속으로 떨어진다. 여행에서 돌아온 한국에서 세 번째 첫눈을 맞았다.

곽재구 시인
2018-11-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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