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이재명이 넘어야 할 대선의 두 개 허들

[서울광장] 이재명이 넘어야 할 대선의 두 개 허들

박성원 기자
박성원 기자
입력 2025-05-02 00:37
수정 2025-05-0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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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리스크 운명 가를 헌법84조
당선돼도 논란과 국론분열 소지
독주·보복 우려 ‘이재명 포비아’
절제된 권력운용 제도화 공약을

미국 대선을 2개월 앞둔 지난해 9월 6일. 뉴욕 대법원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의혹’ 재판의 형량 선고를 대선 이후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자칫 감옥에서 대선을 치를 수도 있는 부담에서 벗어났다. 대선 직후 잭 스미스 연방특별검사는 트럼프 당선인이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 및 백악관 기밀 문건 유출 혐의로 자신이 기소했던 두 사건을 모두 기각해 달라는 요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를 시작으로 트럼프의 네 개 형사 사건은 대부분 재판이 중단됐다.

어제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2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환송심이 다시 최종 확정 절차를 밟는 데 걸릴 시간을 감안하면 이 후보도 트럼프처럼 대선 출마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후보는 트럼프처럼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우리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소추에는 재판도 포함된다”며 이미 기소돼 있는 재판도 대통령 재임 중에는 중단된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하지만 “소추는 새로 기소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이 후보 사건처럼 기소돼 있던 재판은 재임 중에도 진행된다는 해석 또한 뚜렷하게 존재한다. 당장 국민의힘에서는 재판계속론을 근거로 ‘설사 당선이 되더라도 결국 형이 확정될 수밖에 없어 다시 대선을 치르게 만들 후보’라는 것을 대선의 주된 공격 포인트로 삼을 게 뻔하다.

야권 내에서 후보교체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이 후보가 당선이 된다 해도 재판 계속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국론이 둘로 쪼개질 수 있다. 이 후보는 선거법 위반 말고도 위증교사, 대장동, 불법 대북송금, 법인카드 유용 등 모두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사법리스크라는 이 후보의 첫 번째 허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려운 셈이다.

제1당 대선 후보의 거취를 놓고 이런 혼란에 이르게 된 데는 양극화된 대결적 정치구도가 깔려 있다. 과거 우리 선거에선 형사사건으로 한 건이라도 기소돼 있는 사람은 대선이 아니라 국회의원 후보 공천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보수·진보 갈등이 심화되면서 후보의 법적·도덕적 기준과 검증 잣대가 정당 내부에서 허물어져 버렸다. 오직 혈투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근육질 후보’를 내세우려는 승리 지상주의가 불확실한 선거구도의 한 요인이 된 것이다.

이 후보가 마주해야 하는 또 하나의 허들은 ‘이재명 포비아’다. 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다. 게다가 170석 거대정당을 쥐고 있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입법 권력에 이어 행정·사법 권력까지 사실상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 후보는 요즘 “저는 정치보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 말과 지난 대선 때 “정치보복을 누가 대놓고 하느냐. 몰래 하는 거지”라고 했던 것과 어느 쪽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다(이 후보는 “권력은 잔인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집권 후 ‘내란 종식’을 내세운 ‘제2적폐 청산’으로 정치보복의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가 적지 않은 이유다.

이 후보가 절대 다수당을 여당으로 두게 되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법률로 만들어 시행할 수 있다. 위헌법률심사나 탄핵심판을 맡을 헌법재판소 구성도 유리하게 바뀔 것이다. 모진 이미지의 ‘이재명 대통령’이 입법·행정·사법부를 한 손에 넣고 독주한다면 삼권분립이 무너진, 브레이크 없는 공포정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서 이 후보가 장악한 민주당을 향해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을 주문했다. 큰 권력이 주어졌을 때 절제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확신을 유권자에게 심어 주지 못한다면 마지막 허들을 넘는 일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후보가 할 일은 “정치보복은 없다”는 식의 영혼 없어 보이는 말의 성찬이 아니다. 분권형 개헌안과 함께 대통령과 의회의 폭주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구체적 공약으로 제시함으로써 신뢰와 통합의 디딤돌을 놓아야 할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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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2025-05-02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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