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전승절, 북중러 애증의 삼중주

[서울광장] 전승절, 북중러 애증의 삼중주

오일만 기자
오일만 기자
입력 2025-09-02 00:09
수정 2025-09-0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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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갈등 교차한 북중러 체제
전승절 신냉전 구도 가중 압박
공급망 확보, 산업 안보 구축
국제연대 확대로 긴장 관리해야

9월 3일, 중국 베이징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은 역사적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세 나라의 최고 권력이 한 무대에 동시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반세기 넘게 협력과 불신을 반복해 온 북중러 관계가 다시금 결속의 형식으로 응집되는 순간이자 21세기 국제질서 속에서 새로운 균열과 대립의 장을 열어젖히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세 나라의 관계는 애증의 역사였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과 소련의 지원은 북한의 생존을 보장했으나, 1960년대 중·소 분열은 곧 북한을 줄타기로 내몰았다. 중·소 관계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밀착했지만 이념과 국경을 둘러싼 갈등은 무력 충돌로 번졌고, ‘형제’는 하루아침에 경계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진 뒤 북한은 중국의 품에 의존했지만 마음속 의심은 더 깊어졌다. 여섯 차례의 6자회담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협상에만 무게를 두면서 북한을 지렛대로 활용했다는 응어리가 남아 있다. 북한은 ‘지금도 언제든 미중이 대만과 북핵을 맞바꿀 수 있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균형을 다시 흔들었다. 전쟁 장기화로 숨통이 막힌 러시아는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을 필요로 했고, 북한은 그 대가로 군사기술과 경제적 지원을 얻었다. 2024년 양국이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은 상호방위 의무까지 담으며 사실상 냉전형 동맹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독점적 영향력에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베이징은 김정은을 전승절 무대에 세움으로써 여전히 북한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려 했다. 겉으로는 화려한 연대였지만 그 속에는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중국의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

이번 동행의 또 다른 배경에는 한미일 협력 강화가 있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세 나라는 군사정보 공유와 연합훈련을 정례화하며 사실상 안보동맹으로 수렴했다. 올해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방미 외교는 이를 가시화하는 계기가 됐다. 북중러는 이를 포위망으로 인식했다. 북한은 압박을 견제할 카드가 필요했고, 러시아는 전선을 버틸 보급이 필요했으며, 중국은 맞불을 놓을 명분이 필요했다. 이해가 맞아떨어진 순간, 세 나라는 다시 같은 무대에 섰다.

그러나 그 결속은 단단하지 않다. 북한은 체제 안전과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다. 러시아는 당장의 군수 지원이 절실하지만 그 대가로 한반도 위기에 휘말릴 위험을 안는다. 중국은 완충지대를 유지하고 싶지만 러시아의 전시 수요 앞에서 입지가 흔들린다. 이번 전승절 동행은 혈맹의 귀환이 아니라 손익계산을 맞춘 결속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느슨한 결속조차도 동북아에 새로운 그늘을 드리운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북중러가 반미 전선을 내세우며 밀착하고, 다른 쪽에는 한미일이 자유와 규범을 앞세워 협력을 강화한다.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를 통한 글로벌 사우스 결집, 미국과 일본의 공급망 연대는 이 대립을 제도화하며 신냉전의 성격을 뚜렷이 하고 있다. 미중을 축으로 러시아·북한·이란·인도 등이 얽히는 다극적 갈등 구도로 변하고 있다. 한반도는 그 충돌의 최전선으로 다시 떠밀리고 있다.

한국은 이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안보는 한미동맹을 축으로 굳건히 다져야 하지만, 북중러와의 긴장 관리 채널을 열어 위기 확산을 막는 지혜가 필요하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넓혀 한국이 단순히 미국 진영의 일원으로만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과의 갈등을 관리하면서 기후·보건 같은 비군사 영역에서 협력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에서 미국과 손을 맞잡되 중국 의존을 줄이는 다변화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북중러 연대는 오래갈 수 없는 불안정한 구조지만 그 여파는 가장 먼저 한반도에 몰아닥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이 격랑 속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는 안보의 확고함과 외교·경제의 자율성을 동시에 키워 내는 전략적 세밀함에 달려 있다.

오일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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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논설위원
오일만 논설위원
2025-09-02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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