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2014년 클래퍼 DNI 국장 등 대표적
미국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최근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한 사실이 17일(현지시간) 알려지면서 북미 고위급 접촉의 역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르면 5월, 늦어도 6월 초로 예상되는 세기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폼페이오 내정자의 최근 방북처럼 북미 사이의 협상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평양을 찾는 미국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잦았다.
우선 폼페이오 내정자는 지난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 이후 평양을 찾은 최고위급 미국 인사라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올브라이트는 10월23일부터 25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차례 회담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미 외교대표부 개설 등의 안건을 논의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도 역사적인 북한 방문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이듬해 1월 끝나는 임기까지 시간이 촉박해 결국 포기한 바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후인 2009년 8월 평양으로 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이끌어냈으나, 개인 자격의 방문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방북은 앞서 1994년 6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사례도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에도 북한으로 가 억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데리고 나왔다.
현직 장관급 인사로 한정하면 폼페이오 내정자의 방북은 제임스 클래퍼 당시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2014년 11월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찾은 이후 3년 반 만이다.
그 밖의 정치권 인사나 외교 실무진의 방북 사례도 무수히 많았다. 이들의 방북은 북한 핵·미사일 현안을 논의할 회담이 잦았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집중돼 있다.
1991년 6월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을 장으로 하는 미국 국제안보연구소 대표단이 평양을 찾아 북한 측과 토론회를 했고, 1991년 12월에는 스티븐 솔라즈 하원의원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1992년 12월에는 밥 스미스 상원의원이, 1993년 10월에는 게리 애커먼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이, 1994년 12월에는 폴 사이먼·프랭크 머코스키 상원의원과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이 각각 북한을 방문해 주요 인사들과 면담했다.
이후에도 ▲ 1997년 3월 테드 스티븐스 상원 세출위원장 ▲ 1997년 4월 토니 홀 하원의원 ▲ 1997년 5월 막스 보커스 상원의원 ▲ 1997년 8월 포터 고스 하원 정보위원장 ▲ 1997년 10월 토니 홀 하원의원 ▲ 1998년 1월 칼 레빈 상원의원 ▲ 1997년 ▲ 2005년 1월 톰 랜토스 하원의원 ▲ 2007년 4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등의 방북 행렬이 이어졌다.
리처드슨 주지사 방북 때는 빅터 차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이 동행해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을 논의하고 핵 프로그램 폐기 필요성을 논의했다.
또 행정부에서는 1999년 3월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가 북한을 찾아 북-미 제4차 미사일회담을 하고, 같은 해 5월 전직 국방장관인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2002년 10월에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역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찾아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 시인을 촉구했고, 2007년 6월과 12월에는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을 찾았다.
힐 차관보는 2008년 10월에도 방북해 핵검증 원칙을 논의했으며, 최근에는 지난해 6월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을 전격 방문해 북한에 억류돼 있던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석방을 끌어냈다.
민간에서는 지난 2월 타계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1992년부터 여러 차례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고 미 행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사실상의 비공식 특사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