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정상회담 성사되기 어렵다”
“현재 한일의 대등한 양국 관계를 반영한 새로운 선언을 만들어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관계 구축이 필요합니다.”히라이와 슌지(64) 일본 난잔대 교수는 3일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한국 내 주장에 대해서 공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6일은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을 발표한 날이다. 이후 1년간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7차례나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한일 관계가 불안하다는 지적도 있다. 4월 한국 총선, 기시다 총리의 10~20%대 낮은 지지율, 11월 미국 대선 등이 불안 요소다. 어렵게 개선된 한일 관계가 또다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새로운 선언을 만드는 것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히라이와 교수는 이날 도쿄 세타가야구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며 “일본 내에서도 새로운 선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히라이와 교수는 일본의 국제정치학자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 언론에서 손꼽아 인용하는 전문가다.
히라이와 교수는 “1998년 선언이 만들어졌을 때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시기였고 경제적으로 일본이 우위에 있다고 여겨진 상태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이제 한국과 일본은 대등한 관계이며 특히 일본 젊은층 사이에서 한국이 더 문화적으로 뛰어난 국가라고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히라이와 슌지 교수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히라이와 슌지 난잔대 교수가 3일 도쿄 세타가야구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 김진아 특파원
도쿄 김진아 특파원
기시다 총리는 4일 총리관저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 모임 회원들과 만나 “정상 간 관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북일 정상회담 실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히라이와 교수의 설명이다.
히라이와 교수는 “일본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는 상황은 맞다. 현재 외무성이 아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측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어렵다.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 상승을 위해 북일 정상회담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결과물이 없으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비밀스럽게 이뤄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그것을 알고 있는 북한이 정상회담 가능성을 대놓고 언급하는 건 의도가 있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4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층을 향해 북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보수 정권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언급한 것도 있다”고 했다.
히라이와 교수는 “일본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다음 허들인 한국과 미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허들을 넘지 못하는 한 북일 정상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라고 단언했다. 기시다 총리가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이라는 일본 내 북한과 관련된 최우선 과제를 해결하겠다며 여론을 설득한다 해도 다음 관문인 한미 정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한미 정부에 납치 피해자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 없이 북한과 대화하려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이처럼 한미일 공조를 흔들려고 하는 데는 미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11월 대선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히라이와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고 보고 과거 그가 집권했을 때 북미 대화에서 일본이 방해됐다고 생각하며 미리 일본을 단속하기 위해 대화 가능성을 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 해도 한미일 공조를 깨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에서 관건은 결국 한일 협력이다. 히라이와 교수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말한 내년 한일 수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더 나아가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일본에서는 윤석열 정부 집권 기간 어떻게든 한일 관계를 문재인 정부 시절 최악의 관계로 되돌리려 하지 않으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일본에서도 한일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적극적 자세가 필요한 것은 맞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