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그렸다는 개그림 보시오…옛그림인줄 알았더니 인문학 보이오

사도세자가 그렸다는 개그림 보시오…옛그림인줄 알았더니 인문학 보이오

입력 2013-11-16 00:00
수정 2013-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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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을 그리다/고연희·김동준·정민 외 지음/태학사/552쪽/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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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개 그림’. 반갑게 달려가는 작은 개와 무덤덤한 표정의 큰 개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개 그림’. 반갑게 달려가는 작은 개와 무덤덤한 표정의 큰 개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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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척재제시’. 옛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파초의 풍경 중에서도 가장 시원스럽게 그려진 예로 꼽힌다.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의 ‘척재제시’. 옛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파초의 풍경 중에서도 가장 시원스럽게 그려진 예로 꼽힌다.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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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부친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옆에서 투정하듯 눈물을 훔치는 아들과 혼자 놀고 있는 딸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신한평은 윤복·윤수 두 아들과 외동딸을 두었는데 울고 있는 아이가 윤복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부친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옆에서 투정하듯 눈물을 훔치는 아들과 혼자 놀고 있는 딸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신한평은 윤복·윤수 두 아들과 외동딸을 두었는데 울고 있는 아이가 윤복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 소장.


화폭 정중앙에 큰 개가 태산처럼 자리하고 있다. 작은 개 두 마리가 반갑게 달려오는데도 고개만 돌려 바라볼 뿐 무덤덤한 표정이다. 얼핏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그림이지만 그린 이가 사도세자라면 그림 속 구도는 달리 보인다. 엄격한 아버지 영조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광증으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은 사도세자의 비극적 운명이 이 한 장의 그림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 듯 느껴진다. 학자보다는 예술가적 기질이 강했던 사도세자는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사도세자가 그렸다는 말이 전해지는 이 ‘개 그림’에서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아픔과 절규, 왕실의 애환을 읽어 낸다. 따뜻한 부정을 느끼고 싶어 한 사도세자의 안타까운 마음과 아들을 부자 관계가 아니라 군신 관계로만 대했던 영조의 냉정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보여 준다고 풀이한다. 이 그림이 진짜 사도세자의 것인지 정확한 기록이 없고, 큰 개와 작은 개의 품종이 다른 점이 미심쩍긴 하나 매우 흥미로운 해석임에는 틀림없다.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는 인문학자 32명이 옛 그림 속 풍경에서 당대의 풍속과 시대상, 가치 등을 탐사한 책이다. 2년 전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를 펴낸 계간 ‘문헌과 해석’ 팀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그림을 통한 한국학 탐구의 속편을 낸 것. 마음, 감각, 사연, 표상, 소통 등 5개 키워드로 나눠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부터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교류까지 그림에서 읽어 낼 수 있는 한국학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정우봉 고려대 교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인 어머니의 마음에 주목한다. 신윤복의 부친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는 어린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담고 있다. 동생을 질투하듯 투정을 부리는 큰아들과 의젓하게 혼자 놀고 있는 딸을 좌우에 배치해 단란한 가족의 한때를 포착해 냈다. 신한평은 실제 윤복·윤수 두 아들과 외동딸을 두었는데 이를 근거로 그림 속 울고 있는 아이를 신윤복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의 애틋한 모습은 현대에 들어 박수근의 ‘모자’(母子)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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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크고 넓은 파초는 남국의 열대식물처럼 보이지만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일찍부터 재배됐고, 제주도에선 자생했다. 그런 덕에 옛 문인들의 시문과 그림 속에는 파초가 자주 등장한다. 은자의 정원, 도사의 정원, 문인의 정원에는 늘 파초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강혜선 성신여대 교수는 파초 그림 중에서 가장 시원하게 그려진 예로 겸재 정선의 ‘척재제시’를 꼽았다. 사방이 신록으로 빽빽하게 에워싸인 사랑채 정원에서 탕건 차림을 한 흰 수염의 주인이 선물을 들고 온 방문객을 맞는 정다운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한다.

왕조와 국가의 권위를 표현하는 정치적 표상은 미술 분야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한반도 형상과 관련한 담론의 흐름을 다양한 도판과 함께 짚었다. 지금은 호랑이 지도론이 당연시되지만 일제시대에 유포된 토끼 형상은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토끼 형상은 1903년 일본 도쿄국제대학의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호미등이란 지명이 보여 주듯 이전부터 한반도 호랑이 지도론은 존재했다. 정 교수는 “호랑이 모양 지도가 토끼 모양으로 돌변한 것은 급변하는 근대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를 표상하는 이미지가 함께 흔들렸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책에는 이 밖에 1795년 수원 행차 시 정조가 왜 600명의 수행 인원을 대동했고, 안산시 단원구와 단원 김홍도의 관계는 무엇이며, 소설의 안팎에서 그림을 그린 조선 여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들을 소개한다. 글 하나가 20여쪽 안팎으로 한 번에 읽기 적당한 분량인 데다 총 230여개의 도판이 촘촘히 실려 있어 읽는 맛과 보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2013-11-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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