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가 지희영씨가 17일 새벽 서울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4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지씨는 최승희를 잇는 신무용을 고집해온 남성무용가다.
지씨는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무용과에 들어갔다가 최승희의 춤을 배우기 위해 그의 수제자인 ‘한국 신무용의 대모’ 김백봉(경희대 명예교수)의 문하로 옮겨 경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여성 스승을 사사했지만, 남성적인 힘을 보태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춤사위를 만들어냈다.
경희대 대학원 졸업 후 서울예전에서 1979년부터 3년간 후진을 양성하다 자유롭게 춤추고 싶어 1982년 학교를 나와 전업무용가로 활동했다.
1985년 지희영무용단을 창단하고 한국과 일본, 미국, 덴마크, 독일, 바레인 등 해외 공연을 다니며 한국춤을 알렸다.
’오열’, ‘추모곡’, ‘바람부는 대로’, ‘북망산에 새 사람 있으니’ 등을 안무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 중동 아프리카 공연 등 100여회 해외 공연으로 외무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강원도립무용단 예술감독과 김백봉춤보전회 고문, 한국무용협회 이사, 우리춤협회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203호,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958-9721.
연합뉴스
194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지씨는 최승희를 잇는 신무용을 고집해온 남성무용가다.
지씨는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무용과에 들어갔다가 최승희의 춤을 배우기 위해 그의 수제자인 ‘한국 신무용의 대모’ 김백봉(경희대 명예교수)의 문하로 옮겨 경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여성 스승을 사사했지만, 남성적인 힘을 보태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춤사위를 만들어냈다.
경희대 대학원 졸업 후 서울예전에서 1979년부터 3년간 후진을 양성하다 자유롭게 춤추고 싶어 1982년 학교를 나와 전업무용가로 활동했다.
1985년 지희영무용단을 창단하고 한국과 일본, 미국, 덴마크, 독일, 바레인 등 해외 공연을 다니며 한국춤을 알렸다.
’오열’, ‘추모곡’, ‘바람부는 대로’, ‘북망산에 새 사람 있으니’ 등을 안무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 중동 아프리카 공연 등 100여회 해외 공연으로 외무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강원도립무용단 예술감독과 김백봉춤보전회 고문, 한국무용협회 이사, 우리춤협회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203호,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958-9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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