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66건 불일치…”국민 눈높이에서 설득해야”
대법원이 국민참여재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심원의 평결을 따르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배심원 대다수의 판단을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29일 법원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합의13부(김상동 부장판사)는 최근 열린 이모(22)씨의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9명 가운데 7명의 무죄 평결이 나왔으나 이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 1월 술을 함께 마시고 서로 다른 모텔 방에 투숙했다가 피해자가 있는 방으로 찾아가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 등)로 기소되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재판에서는 이씨와 피해자 사이에 ‘묵시적 동의’가 있었는지, 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협박이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이씨는 “사건 당일 어깨동무를 하는 등 신체접촉이 있어 성관계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고 폭행이나 협박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9명의 배심원 중 7명은 이씨의 변론을 받아들여 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재판부는 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씨가 반항하는 피해자의 손을 제압하고 어깨를 누른 점 등을 들어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배심원 평결을 뒤집은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배심원들이 주거침입과 묵시적 동의, 강간죄의 폭행·협박 개념을 어려워했고 강간미수로 처벌하는 것도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선고 다음날 항소했다. 이씨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하겠다고 재판 중에 여러 차례 말했다”며 “상식을 갖춘 일반 시민이 강제적인 성관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본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반발했다.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이 크게 어긋난 경우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지난해 5월 울산지법은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모(27)씨의 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의 무죄 평결에도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심신미약 상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848건 가운데 유무죄에 대한 평결과 판결이 다른 사건은 전체의 7.8%인 66건이었다.
현재 국민참여재판에서 평결은 권고의 효력만 있어 재판부가 다수 배심원의 의견을 반드시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르면 내년부터 재판부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배심원의 평결대로 유무죄를 판결해야 한다. 배심원 4분의3 이상이 찬성하는 때에만 평결이 성립한 것으로 보는 ‘가중다수결제’도 도입된다.
평결에 ‘기속력(판결의 구속력)’이 부여되면 최악의 경우 법리상 무죄인 피고인에게 유죄가 내려질 수도 있다.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마련한 관련 법률 개정안을 보면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에 위반되는 경우’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평결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어떤 경우를 예외로 할지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법 개정과 시행 과정에서 살펴봐야 한다”며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토대로 하거나 법률을 잘못 적용한 경우 평결의 기속력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배심원은 국민의 대표인 만큼 검사와 변호인이 배심원의 눈높이에서 법리와 쟁점들을 충분히 정리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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