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잊는 밥 한 끼·연탄 한 장… 역병 속에 핀 사랑이 따뜻합니다

겨울을 잊는 밥 한 끼·연탄 한 장… 역병 속에 핀 사랑이 따뜻합니다

최영권 기자
최영권 기자
입력 2021-02-07 22:46
수정 2021-02-0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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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 노숙인 배식·연탄 배달 봉사

서울역 복지시설 확진에 무료급식 중단
‘5년째 봉사 중’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육개장 130그릇 준비… 설날에도 봉사

노원 백사마을 6가구에 연탄 200장씩
개당 3.4㎏ 12개 지고 오르니 땀범벅
“크리스마스 이후 첫 지원… 너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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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왼쪽) 루치아 수녀를 비롯한 한국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숭례문수입상가 앞에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따뜻한 밥과 육개장을 용기에 옮겨 담고 있다.
이정숙(왼쪽) 루치아 수녀를 비롯한 한국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숭례문수입상가 앞에서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따뜻한 밥과 육개장을 용기에 옮겨 담고 있다.
금요일인 지난 5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숭례문수입상가 앞에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트렁크를 열자 간이 식탁이 차려졌다. 한국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의 이정숙 루치아 수녀가 흰색 스티로폼 상자를 꺼냈다. 매콤하고 구수한 육개장 냄새가 퍼졌다. 10여명의 수녀와 봉사자들이 익숙하고 빠른 솜씨로 일회용 국밥 그릇에 육개장을 담고 마스크와 바나나까지 챙겨 가방에 넣었다. 봉사자들과 함께 가방을 나눠 들고 지하도에 내려갔다. 잠잘 채비를 하던 노숙인들이 따뜻한 도시락을 반겼다. 육개장과 봉사자를 실은 승합차는 5분 거리인 서울역 6·7번 출구 앞에서 다시 멈췄다. 같은 작업이 이뤄졌다. 오후 7시 20분, 한 시간도 안 돼 준비한 육개장 130그릇이 동났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우려로 노숙인 급식시설이 문을 닫고 연탄 기부가 줄었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쪽방촌에서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는 이정숙 수녀는 5년 전부터 매주 금요일 노숙인 배식 봉사를 해 왔다. 매주 배식을 돕는 봉사자만 20여명이 넘는다. 지난해 추석 때부터 봉사에 참여했다는 한 수녀는 “요즘처럼 추울 때 노숙인들이 가장 원하는 건 뜨끈한 밥 한 끼”라며 “치아가 없어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분이 많아 고기를 푹 삶았고, 너무 짜거나 맵지 않게 조리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을 시작으로 서울역 노숙인 복지시설에서 83명(7일 0시 기준)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은 대부분 중단됐다. 수녀들은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워진 노숙인들을 위해 설날인 오는 12일에도 승합차에 육개장을 싣고 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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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최영권 기자가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연탄 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6일 최영권 기자가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연탄 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에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여섯 가구에 연탄 1200장을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연탄 200장이면 한 집이 한 달 정도 보일러를 땔 수 있다. 한 개에 3.4kg인 연탄 12개를 간이 지게에 지고 두 시간 동안 10번 넘게 경사길을 오르내렸다. 온몸에 쏟아진 땀 때문에 셔츠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연탄을 전달받은 김모(69)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 마지막으로 연탄을 받고 소식이 없어 연탄을 사야 하나 싶었는데 너무 감사하다”며 “남은 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난방비를 아끼려고 가스 보일러로 바꿔 봤지만 단열재 없이 얼기설기 지은 판잣집은 연료비가 더 많이 들어 다시 연탄을 때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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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복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대표는 “올해 연탄 기부는 230만장 정도로 목표 수량인 250만장에 못 미쳤다”며 “연탄 나르기 자원봉사도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예년의 절반(45%)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2021-02-0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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