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추어탕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추어탕

입력 2012-10-29 00:00
수정 201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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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은 지방마다 끓여 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짜맞춘 듯 같은 게 있습니다. 추어탕의 원료인 미꾸라지는 가을이라야 먹을 만하다고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하기야 하찮은 생선 하나에도 계절의 의미를 부여해 ‘봄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했고 ‘여름 민어는 송아지하고도 안 바꾼다.’고 했으니 음식마다 절기의 특성을 부여했던 조상들의 식도락에 대한 체험적 지혜가 미꾸라지라고 빼놨을 리가 없지요.

미꾸라지가 가을에 살 찌는 건 당연한데, 살도 논바닥에 떨어지는 벼꽃을 받아 먹고 찌운 걸 일품으로 쳤습니다. 논바닥의 차진 진흙 속을 비비적거리며 힘을 키운 게 방죽에서 할랑하게 노닐던 미꾸라지보다 훨씬 실하다고 봤던 거지요. 그렇다고 보면 요새 내력 모르고 먹는 중국산 미꾸라지탕이 옛적에 가을걷이 후 논 가는 쟁기 보습에 뚝뚝 잘려 꼼지락거리던 그 미꾸라지로 끓여 낸 탕과는 격이 달랐을 법도 합니다. 그런 미꾸라지는 살이 오지게 올라 통통하고 뱃바닥이 누르스름한 게 보기에도 튼실했거든요. 그걸 잡아 늦가을 별미로 끓여 냈는데, 남녘에서는 뼈째 갈아서, 윗쪽에서는 통째로 끓였고, 전라도에서는 갖은 양념을 넣어 걸쭉하게, 경상도에서는 맑은 국물이 돌도록 담백하게 끓여 냅니다. 추어탕을 솥에 앉힐 때 솥바닥에 두부를 얹고 산 미꾸라지를 넣어 끓이면 솥이 달아 오르면서 이 놈들이 죄다 두부 속으로 파고드는데, 그걸 푹 익혀 결대로 썰어 먹는 맛도 아주 독특합니다.

힘겨운 가을치레 후에 먹는 미꾸라지엔 단백질은 물론 불포화지방과 미네랄이 많아 한철 보신용으로 그만한 먹거리도 흔치 않습니다. 미꾸라지를 보면 장어처럼 피부가 미끈덕거리는데, 이게 정제된 단백질로 이뤄진 천연보습제 콘드로이친입니다. 겨울잠에 든 곰은 제 발바닥을 핥으며 허기를 이겨내는데, 그때 곰이 취하는 게 제 발바닥에서 분비되는 콘드로이친이라니 추어탕이 결코 간단한 음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즈음 가을산에 올라 서리 맞은 단풍을 즐긴 뒤 추어탕으로 헛헛한 허기를 달래 보는 건 어떨까요. 건강도 챙기고 입맛도 살리는 선택일 듯합니다만.

jeshim@seoul.co.kr



2012-10-2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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