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보다 양 택한 ‘수주경쟁’ 올인…무리한 일감 확보 오히려 부메랑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후폭풍이 거세다. 이대로 놔두면 몇몇 기업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고용 효자 기업’으로 불리며 국가 경제 발전에 한 축을 담당했던 조선·해운업체는 어쩌다 부실기업이 됐을까. ‘수주 강국’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나. 해운사는 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장기 용선료 계약을 맺어 스스로 ‘덫’에 걸렸을까. 수조원대 국민 혈세를 쏟아부은 정부와 채권단은 부실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이 같은 궁금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 봤다.Q. 수주 강국이 부실로 이어진 까닭은.
A. 선박 수주 잔량만 놓고 보면 세계 1~4위 업체가 모두 국내 조선사다. 외견상 수주 강국이다. 하지만 질보다 양을 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국내 업체 간 ‘제 살 깎아먹기’ 경쟁에 해외 발주처만 배불리고 적자는 심화됐다. 2011년 ‘빅3’보다 더 높은 수주목표(128억 달러)를 제시한 STX조선해양은 저가 수주 탓에 이듬해 곧바로 자금난에 처했다. 현재 법정관리 문턱에 서 있다. 선가를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야 할 ‘맏형’ 현대중공업도 저가 경쟁에 뛰어들면서 2014년부터 2년 연속 조 단위 손실을 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건조 능력을 넘어선 무리한 일감 확보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Q. 왜 장기 용선료 계약을 맺었나.
A. 컨테이너선은 ‘버스’처럼 같은 노선을 계속 돈다. 물동량이 늘어나면 선박을 늘려야 하는데 배를 살 수 없다면 빌리는 방법(용선)밖에 없다. 1~2년 단기로 계약을 맺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영업을 위해 대체로 10년 이상 장기로 묶어 둔다. 문제는 용선료를 시황 변동에 관계없이 고정으로 계약하면서 시작됐다. 업황이 좋을 경우 운임에 비례해 용선료가 계속 오르기 때문에 고정 계약이 유리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해운사가 ‘독박’을 쓴다. 올 초 용선료가 8000달러(컨테이너선 8000TEU급)까지 떨어졌지만 2010년 당시 5만 달러 용선료를 지급하면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Q. 정부와 채권단은 책임 없나.
A. 정부는 해운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채비율’이라는 일률적 잣대를 들이댔다. 외환위기 당시 부채비율을 200% 밑으로 낮추라고 하면서 해운사들이 갖고 있던 배를 내다 판 일화는 유명하다. 2000년대 해운업 호황일 때 국내 선사들이 선박금융을 이용해 선박을 사들이지 못하고 장기 용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10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을 투입한 대우조선해양을 제때 매각하지 못하고 16년간 방치한 것도 조선업 위기를 불러온 원인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6-05-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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