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릇/안도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릇/안도현

입력 2020-10-08 17:20
수정 2020-10-09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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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 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말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 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그릇이 지닌 태생적인 빗금을 빙렬이라 한다. 그릇 자체의 하자임에 분명한 이 빙렬에 세월의 때가 깊게 스밀 때 명품이 태어난다.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이도다완도 그 투박한 외형에 곁들인 무심한 빙렬의 전개가 없었다면, 거기 스민 고즈넉한 삶의 때가 없었다면 지고의 미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삶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아쉬움과 그리움 절망과 좌절의 빙렬들이 무수히 모여 한 인간이 되는 것. 오늘 우리 가슴 안의 그릇이 지닌 때 묻은 빗금들을 가만히 살펴보자. 회한과 부끄러움의 빗금들이 가득 쌓인 그릇일수록 그릇은 조금씩 완성형에 가까워지는지 모른다.

곽재구 시인
2020-10-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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