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지

입력 2011-12-18 00:00
수정 2011-12-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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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 위안부 제도 운영, 피해 여성 수만∼수십만명 추정

▲1965년 9월 = 한일 청구권협정(재산·청구권 문제 ‘안전히, 최종적으로 해결’ 표현. 일본은 이에 따라 위안부 문제도 해결됐다고 주장)

▲1991년 8월 14일 = 한국인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첫 위안부 증언 기자회견

▲1991년 12월 6일 = 김학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3명 포함해 35명, 일본 정부 제소(→2004년 최고재판소서 원고 패소 확정)

▲1992년 1월 8일 = 위안부 피해자, 일본 대사관앞서 정기 수요시위 시작

▲1992년 1월 11일 = 아사히신문 ‘일본군 위안소 설치·통제 등에 관여한 사실 증명 자료 방위청 도서관에서 발견’ 보도

▲1992년 1월 14일 = 미야자와 기이치 日총리, 방한 전 회견에서 위안부 문제 사죄(”군이 직접 관여한 점 부정할 수 없다”)

▲1992년 2월 25일 = 정부, 위안부 피해자 신고센터 설치(2007년까지 234명 피해사실 신고)

▲1992년 7월 6일 = 가토 고이치 日관방장관 “위안소의 설치나 운영·감독 등에 정부가 관여했다” 인정

▲1993년 3월 = 정부,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영구임대주택 우선 입주권 지급

▲1993년 8월 4일 = 고노 요헤이 日관방장관, 담화에서 “일본 관헌 등이 (위안부 모집에) 직접 가담했던 일도 있다” 인정

▲1994년 8월 31일 = 무라야마 도미이치 日총리, 위안부 사죄 담화(민간 기금에 의한 위문금 지급 구상 발표)

▲1995년 7월 = 일본, 아시아여성기금 방식 해결 시도, 한국 피해자 “일본 정부 책임 빠졌다” 반발

▲1996년 4월 = 유엔 인권위원회 ‘전쟁 중 군대 성노예 문제 조사보고서’ 수용 결의(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보상 촉구)

▲1996년 6월 = 일본 문부성, 위안부 문제 기술한 중학교 7개 교과서 검정 승인

▲1997년 1월 30일 = 일본 새역모 설립 총회. 위안부 기술 등 삭제 요구

▲2000년 4월 = 일본 민주당 ‘전시 성적 강제피해자 문제의 해결 촉진에 관한 법률안’(모토오카 법안) 첫 제출(통과 안됨)

▲2000년 12월 = 도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 여성법정, 히로히토 일왕과 일본 정부에 유죄 선언

▲2007년 3월 = 아시아여성기금 해산.

▲2007년 7월 30일 = 미국 하원 본회의,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하라고 결의

▲2010년 4월 = 중학교 교과서 검정 신청시 유일하게 ‘종군위안부’ 표현 사용했던 니혼쇼세키신샤 신청 안함

▲2011년 8월 30일 = 헌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에 대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고 판단

▲2011년 9월 = 외교통상부, 일본에 위안부 배상청구권 문제 외교협의 요청

▲2011년 12월 14일 = 위안부 피해자 1천번째 수요시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 설치

▲2011년 12월 18일 = 이명박 대통령, 한일 정상회담서 위안부 문제 집중 거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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