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무드속 여행 규제 완화로 관광객 급증
미국인들이 마치 쿠바로 ‘역탈출’ 하는듯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올해 들어 지난 9일까지 쿠바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 수는 5만1천458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3만7천459명보다 36% 증가했다고 AP통신이 아바나대학의 통계를 인용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작년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양국 간 구원을 청산하고 외교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쿠바를 찾은 미국인 가운데 직항은 3만8천476명이 이용해 작년 같은 기간 2만9천213명을 훨씬 웃돌았다.
제3국을 거쳐 쿠바를 찾은 나머지 1만2천982명도 작년 같은 기간의 8천246명보다 57% 늘었다.
통상 영주권을 획득한 뒤 현지에 있는 친인척을 만나러 가는 쿠바계 미국인이 관광객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양상이 판이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인이 쿠바를 찾으려고 경유지로 이용하는 나라는 주로 멕시코, 바하마제도, 자메이카, 카이만제도 등이다.
미국은 외교 관계 정상화에 따른 후속 조치로 가족 방문이나 교육, 종교 등 12개 항목에 한정해 정부 부처의 승인 없이 쿠바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2개 항목의 기준에 딱히 들어맞지 않아도 여행 허가를 받은 미국인 관광객도 많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쿠바에 대한 여행 규제가 머지않아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달 중순에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아마추어요트대회에 참가하는 요트 5대가 재무부의 승인을 얻은 뒤 미국 플로리다해협을 출항해 아바나의 헤밍웨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또 아바나에서 열릴 예정인 ‘헤밍웨이 긴 주둥이 물고기 잡기 대회’에도 35년 만에 미국 낚시 애호가들이 참가한다고 한다.
일반 관광 목적이 방문을 포함한 여행 자유화 조치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도 전에 미국인들이 서둘러 쿠바를 찾는 주된 이유는 ‘쿠바가 변하기 전에 쿠바다운 모습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쿠바 간 본격적인 경제 교류로 미국 자본의 투자가 대거 유입되면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가 쿠바를 뒤덮을 것이 눈에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앞서 쿠바와 정치적 대화와 경제 협력의 대화를 시작한 유럽연합(EU)의 외교 공세도 만만찮다.
생산된 지 60년이 넘는 자동차 등 1959년 혁명 이전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쿠바 문화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관광이지, 맥도날드나 스타벅스가 가득 찬 거리를 보는 것은 쿠바 여행의 의미가 퇴색한다고 미국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혁명 정부를 수립한 피델 카스트로는 1980년 정치적 박해와 생활고를 비관한 내국인 12만5천명이 보트에 타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것을 허용했다.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이러한 ‘보트피플’은 수십 년간 이어져 아직도 플로리다해협, 멕시코만, 지중해 등지 곳곳에서 발견된다.
미국인들이 쿠바를 찾고자 경유하는 제3국은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거쳐 가는 곳과 공교롭게도 같다.
쿠바인들은 수십 년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거친 파도에 목숨을 내맡기고 미국행 보트에 올랐으나, 미국인들은 ‘삶의 휴식’을 위해 쿠바행 티켓을 찾는 모양새다.
미국인들의 방문 목적이 어떻든 간에 올 들어 이달 초까지 쿠바를 찾은 세계 관광객은 134만9천900여 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54만7천100여 명보다 14%나 늘어나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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