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전쟁국가의 부활’
이웃 일본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는 길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무력사용을 금지한 전후 평화헌법은 물론 동북아시아 역사까지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일본 우익의 국가관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박삼헌 건국대 교수는 신간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에서 메이지유신으로 막부를 폐지하고 근대적 의미의 국가를 탄생시킨 19세기 중후반 일본을 탐색한다. 일본 국가 정체성의 뿌리를 캐기 위해서다.
1889년 제정된 메이지 헌법은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천황이 통치한다’로 시작한다. 태평양전쟁 때까지 50년 넘게 이어진 일본제국 체제에서 일본인은 일왕의 신하인 신민(臣民)으로 규정됐다. 주권은 일왕에게 있었고 신민으로 구성된 의회는 입법에 참여할 뿐 일왕의 주권을 나눠갖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런 인식의 기원을 메이지 정부의 신분제 폐지에서 찾는다. 현대 일본에서도 부라쿠민(部落民)으로 불리며 암암리에 차별받는 불가촉천민, 즉 에타(穢多)와 히닌(非人)은 1871년 천칭폐지령으로 평민이 됐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차별 폐지는 천부인권을 존중해서가 아니었다. 외국과 교류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방치하는 게 ‘국가적 모욕’이자 ‘왕정의 큰 결함’이라는 국가 중심적 사고 때문이었다.
일왕을 모시는 일본은 왕정 전통의 서양 여러 나라들처럼 형식상 입헌군주국이다. 그러나 러일전쟁 전후 일왕과 신민은 혈연이라는 연결고리로 더욱 강하게 묶인다. 이른바 ‘입헌적 족부통치국’이라는 개념에 따라 일왕은 ‘일본 민족의 아버지’가 됐다. 청일전쟁·타이완침공 등 제국 일본의 잇따른 전쟁이 애국심과 봉사·희생정신, 철저한 국가관을 일본인의 내면에 심었음은 물론이다.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대학원 교수 등 일본 진보인사 5명이 쓴 ‘전쟁국가의 부활’은 아베 신조 총리와 지지세력이 밀어붙이는 헌법 개정의 의도와 배경을 파헤친 책이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군대가 없는 나라다. 개헌 세력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일본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군사비 지출 순위에서 세계 6위권을 지키고 있다. ‘군사소국’이라고 호소하면서 미국과의 공동작전까지 계산해 군사력을 키워온 우익의 모순이다.
아베는 ‘전후 가장 오른쪽으로 쏠린 총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라는 가족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회의 등 우익단체들이 든든한 배경이 됐다. 특히 회원 3만8천여명을 거느린 일본회의는 ‘천황 중심의 일본, ’전쟁하는 나라‘를 내걸고 역대 총리들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요구하거나 역사 교과서 채택에 관여하는 등 정치권의 극우화에 애써왔다. 물론 아베와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라는 슬로건을 함께 사용하는 돈독한 관계다.
아베와 그 지지세력의 역사 인식은 사실상 대일본제국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여성활약담당상을 지낸 아리무라 하루코는 2012년 참의원 선거에서 “만세일계의 나라를 다음 세대에!”라고 주장했다. 만세일계는 일본 왕가의 혈통이 한번도 단절되지 않았다는 일종의 신화다.
천황과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 = 알에이치코리아. 320쪽. 1만8천원.
전쟁국가의 부활 = 책담. 김경원 옮김. 324쪽. 1만6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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