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틈에 빨려드는 순간, 미지의 감각이 열리다

빛의 틈에 빨려드는 순간, 미지의 감각이 열리다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5-06-17 00:54
수정 2025-06-1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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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 내한, 17년 만의 개인전 ‘더 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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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의 ‘웨지워크’ 시리즈를 미국에서 선보였을 때 모습.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도 전시장 공간에 맞춰 제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페이스갤러리 제공
제임스 터렐의 ‘웨지워크’ 시리즈를 미국에서 선보였을 때 모습.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도 전시장 공간에 맞춰 제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페이스갤러리 제공


손을 더듬어 컴컴한 전시장으로 빨려 들어가면 붉은빛이 만들어 낸 직사각형을 만난다. 눈이 익숙해질 즈음 그 속에 또 다른 초록색 사각형이 들어서고 빛은 또다시 그 안에 파랑의 기울어진 사각형을 만들어 낸다. 선이던 사각형은 어느 순간 면이 되고 어느 순간 직육면체와 삼각기둥이 붙어 있는 부피감을 드러낸다. 가장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붉은빛은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가 있다. 작품을 마주하던 관람객은 과연 자신이 작품 바깥에 있는 게 맞는지 혼동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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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 윤수경 기자
제임스 터렐.
윤수경 기자


●“빛으로 확장의 가치 느낄 수 있게 설계”

‘빛의 사제’라고 불리며 빛을 통해 자신의 예술철학을 선보이는 세계적인 작가 제임스 터렐(82)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바로 옆 페이스갤러리에서는 17년 만의 개인전 ‘더 리턴’을 오는 9월 27일까지 일정으로 선보이고 있다. 갤러리 3층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웨지워크’가 설치됐다. 작품과 마주하는 20여분 동안 관람객은 빛이 빚어 놓은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태생인 터렐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출발한 ‘빛과 공간’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다. 1960년대부터 빛과 공간의 물질성을 다루는 지각 예술에 주력해 왔다. 그가 침묵 예배를 통해 내면의 빛을 볼 수 있다고 믿는 퀘이커 교도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리움미술관에서 관객과 만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빛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꿈이나 영성을 가진 경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빛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요. ‘컴컴한 터널을 지나 마침내 빛을 만났다’처럼요. 인간이 빛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어떻게 하면 빛을 다룰 수 있을까’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빛을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풍덩 빠질 수 있는 부피가 있는 사물로 받아들이길 바랐어요. 마치 회화처럼요.”

터렐은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보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기 중에서 별이 빛에 따라 보이고 안 보이게 되는, 시각적이던 것이 비시각적으로 변하는 게 흥미롭게 보였다”며 “제 작품이 어디가 벽이고 허공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으며 감각 혼동으로 환영을 만든다”고 소개했다.

이런 혼동은 일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덧없음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순환적인 공간 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그 틈을 열어 두는 일이야말로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경계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자아가 시작되며 확장된다고 생각해요. 흔히 외부 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조개껍데기가 열리듯 틈을 만들어 외부라고 생각한 것들이 내부와 맞닿는 과정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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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2층에 자리한 ‘글라스워크’ 연작. 유리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기반으로 해 만든 작품으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윤수경 기자
전시장 2층에 자리한 ‘글라스워크’ 연작. 유리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기반으로 해 만든 작품으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윤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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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2층에 자리한 ‘글라스워크’ 연작. 유리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기반으로 해 만든 작품으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윤수경 기자
전시장 2층에 자리한 ‘글라스워크’ 연작. 유리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기반으로 해 만든 작품으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윤수경 기자


●한국인 아내·국군병원서 치료 등 인연도

터렐은 아내의 고향인 한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1961년 라오스에서 의료 요원으로 활동하다 부상을 입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자리에 있던 국군병원에서 치료받은 인연도 있다. 그는 “1961년 대한민국은 전쟁에서 회복하던 시기였고, 이후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그 회복력에 깜짝 놀랐다”며 “여러분 모두가 그 회복에 기여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국의 문화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로 부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국 북부 애리조나주 오색사막 내 화산 분화구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의 구축 과정을 담은 사진, 판화, 조각도 소개됐으며 ‘글라스워크’ 연작에 해당하는 2점의 대형 곡면 설치 작품 등도 만날 수 있다.
2025-06-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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