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손익계산서… 한국의 失은
지난 3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문은 자동차다. 자동차는 미국이 FTA의 추가 협상을 요구한 이유이자 우리 정부가 기존 한·미 FTA의 가장 큰 성과로 지목했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철폐 시한이나 환경·안전 기준 등을 살펴봤을 때 미국차의 한국 수출 환경은 크게 개선됐지만 우리가 얻어 낸 것은 찾기 어렵다.
한국산 트럭 관세도 8년간 기존 25%가 유지된 뒤 나머지 2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원래는 25%의 관세가 10년간 균등하게 없어질 예정이었다. 반면 미국산은 원안대로 8%의 관세가 바로 철폐된 채 국내에 수입된다.
본협정에서 한국차는 미국시장에서 경쟁 관계인 일본차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번 추가 협상으로 발효 5년 뒤에야 ‘FTA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더구나 추가 협상에 따라 유럽차 업계가 한·유럽연합(EU) FTA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환경 기준도 미국차만 특혜
새로 마련된 자동차 특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도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관세 인하 등에 따라 수입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수입국 정부가 인하된 관세를 다시 원래 수준으로 복귀시키는 조치를 말한다.
우리 정부는 양국이 세이프가드를 발효할 수 있고, 실제 적용 사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47만 6857대의 자동차를 수출한 반면 미국차는 7663대만 수입했다. 세이프가드가 발효되면 우리 기업의 피해가 훨씬 큰 셈이다. 더구나 미국이 한국산 승용차와 트럭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각각 15년, 20년으로 일반 세이프가드 적용 기간인 10년보다 더 길다.
안전·환경기준 등 우리 측의 비관세 장벽 역시 상당히 낮아졌다. 기존 협상문에서는 미국 안전기준대로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는 차량 판매량이 연간 6500대 미만이었지만 이번에 2만 5000대로 확대됐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미국차 차종의 연간 판매대수가 5000대를 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차 브랜드들은 국내 기준과 상관없이 한국에서 자동차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환경 기준의 경우 한국은 앞으로 10인 이하 승용차의 경우 연비를 17㎞/ℓ 혹은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140g/㎞로 강화할 방침이지만 미국차는 20% 정도 완화된 14.6㎞/ℓ 혹은 이산화탄소 168g/㎞만 충족하면 된다. 대신 우리 정부가 추가 협상의 성과로 언급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미국 관세 4%의 즉시 철폐’는 기존 합의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다.
●업체들 “견딜 만하겠지만…”
국내 자동차업계는 통상부문의 불확실성이 제거됨으로써 미국 시장에 대한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심스럽게 “견딜 만한 합의 내용”이라는 말도 나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품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서 올해 40억 달러로 전망되는 중소기업의 부품수출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이로써 현대기아차의 미국 현지 완성차 공장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대차의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의 조지아 공장이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올해 95만대로 전망되는 한국차의 미국시장 판매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세 혜택이 줄면서 대미 물량이 많은 현대기아차 등을 중심으로 수출 감소와 수출 전략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트럭관세 철폐가 미뤄진 것도 ‘국내 업체들이 아직 생산하지 않고 있지만 향후 개발해 미국에 진출하면 현지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미국 측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2010-12-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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