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조사위 공동위원장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를 하면서 기막힌 사례를 많이 봤어요. 딱한 사정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껴 계속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보건복지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피해 조사과정에서 느꼈던 소회를 말하면서 정부에 화학물질을 전담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가 소속된 한국환경보건학회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를 시작하기 전인 2012년 자비를 들여 사례를 연구했다.
연구자가 가가호호 방문해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냈고, 이후 질병관리본부에 이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폐손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가습기 피해 조사 중 가장 큰 장애는 시간 부족이었다.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빨리 피해 조사를 마쳐야 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영향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례마다 모두 가슴아픈 사연이었지만 특히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중증 폐질환에 걸린 임신부는 사망하고 아이만 제왕절개로 살려낸 경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엄마 없는 아이를 키우는 할머니는 손녀도 같은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다.
백 교수는 “연구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독성이 태아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지만 당시에는 그 기전을 설명할 수 없어서 사례를 발표하기는 난감했다”며 “최근에서야 독성이 태아에게도 악영향을준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초기 피해 판정 기준은 주로 폐에 집중됐기 때문에 다른 장기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피해자 규모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는 “폐질환 소명에 주로 중점을 뒀기 때문에 기관지 윗부분인 코 등 다른 부위는 고려되지 못했다”며 “다른 여러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초기 정부 부처끼리 책임을 미루느라 아까운 시간을 보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산업자원통상부는 제품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지만 건강 문제는 관여하지 않고, 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는 건강에 관한 사안을 다루지만 화학물질은 소관이 아니라는 식으로 서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누구를 탓하는 것도 아니지만 화학물질로 인한 국민 건강 손상 문제는 정부 업무 분장에 빠져있다”며 “가습기살균제 뿐 아니라 화학물질 전반에 제조와 수입, 제품화, 유통 각 단계에서 관리체계를 조율할 기구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라도 환경부가 살균제 등 살생물제를 전수조사하고 허가제를 도입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정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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