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 “‘하베스트’ 인수가격 상향 조정 때 회의록 없어”
“사업 규모가 1조 이상 갑자기 뛰었는데 그와 관련된 근거(기록물)가 없다. 안타깝다”9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측이 12개 공공기관의 대규모 국책사업과 관련해 기록물 관리실태 점검결과를 취재진에 설명하면서 언급한 말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하며 그간 아무런 원칙이나 기준 없이 관리돼온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실태를 개탄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2009년 10월 8일 캐나다 업체인 하베스트 인수를 위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열어 ‘해외 석유회사 자산인수(안)’을 의결했다.
이어 같은 달 26일 다시 회의를 열어 인수금액을 28억5천만달러(2조4천억가량)에서 40억7천만달러(3조5천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변경안을 재심의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 오른 안건을 기록물로 관리하지 않은 탓에 국가기록원은 지난해 6∼8월 실태점검에서 논의 내용을 기록해둔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 나랏돈 1조원 이상을 더 쓰겠다며 연 회의 내용과 그 근거를 확인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저도 공무원인데 1조원은 고사하고, 몇억원을 쓰면 근거를 남겨두는데…”라며 엉망이 된 석유공사의 기록물 관리실태에 혀를 찼다.
이 밖에도 국가기록원이 확인한 기록물 부실 관리실태를 보면 국토연구원은 4대강 연구용역 수행과정 상에서 기록물을 생산하지 않거나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위원회 회의록은 미등록됐고, 연구노트는 아예 생산되지 않았다.
또 기록물 평가 및 폐기절차 과정에서 무단파기 등 부적절한 부분이 파악됐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도 낙동강 종합치수계획 및 하천기본계획 관련 기록물을 미생산했다. 국토교통부가 4대강 추진본부 폐지 시 기록물 인수인계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처리한 부분도 드러났다.
중앙하천위원회의 생산·접수기록물 등록이 누락되거나 4대강살리기 자문위원회 기록물 생산에서도 규정에 맞지 않은 부분이 확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무조정실은 세월호추모위(분과위원회) 회의록을 미등록했고, 등록관리마저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기록물 보존 기간을 하향 책정하거나 사업 프로젝트 하부 단위과제를 제대로 편철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
국가기록원은 이번 점검에서 부실한 것으로 확인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실태 내용은 점검 대상기관이 모두 인정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기록원은 기록물 관리실태 점검이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 과거 특정 정부의 국책사업에 집중됐다는 질의에 “국민적 관심이 크고, 논란이 있었던 일에 대해 점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기록원이 행안부 소속이고, 그간 행정직 원장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기관에 통보해 조용히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 왔던 것 같다”며 “각 기관에 시정을 요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외부에) 드러내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며 언론에 실태점검 결과를 공개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고의로 파기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지만 규정을 숙지하지 못해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문체부 블랙리스트’ 때 공무원들이 집에까지 해당 기록을 보관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보호하며 부당한 관행에 저항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