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등 과정 새학기부터 도입… 학습 대비 요령
중국 송나라 때 원숭이를 여러 마리 키우는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공은 도토리를 주워다 원숭이들에게 먹였는데 원숭이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도토리를 충분히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저공은 원숭이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씩 주마.” 도토리 양이 줄자 원숭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저공은 곧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말을 바꿨고 원숭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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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부산 중구청에서 열린 ‘스토리텔링 수학 설명회’에 몰린 청중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는 학부모뿐 아니라 학교교사, 학원강사들도 대거 몰려 스토리텔링 수학의 수업 적용 방식에 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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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에 얽힌 이야기는 이제껏 국어나 한문 교과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오는 새학기부터는 이런 이야기들을 수학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이야기나 흥미 있는 소재를 통해 수와 계산법을 더욱 쉽고 재밌게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학생들은 저공과 원숭이의 일화를 통해 ‘잔 술수를 이용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모습’을 뜻하는 고사성어뿐 아니라 ‘3+4=4+3=7’과 같이 더하는 숫자의 순서를 바꿔도 그 합은 같다는 ‘덧셈의 교환법칙’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문제풀이식 수업이 아닌 수학적 개념의 탄생 과정과 배경 등을 배우는 이른바 ‘스토리텔링(서술형) 수학’ 수업방식이 초등학교 1·2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 달 새학기부터 시작된다. 기존 수학 수업이 개념 정리와 예시문제 풀이, 연습문제 풀이 등 문제풀이 위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스토리텔링 수학 수업이 시작되면 하나의 수학적 개념이나 공식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등이 수업시간에 다뤄지게 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1월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수학이 입시 대비 변별력 확보를 위한 과목이 된 상황에서 학생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수학교육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사고력과 창의력을 위한 수학을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교과서다.
교과부는 “요약 설명과 공식, 문제 위주로 구성돼 있는 기존 교과서에 수학적 의미, 역사적 맥락 및 실생활 사례 등을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하겠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창의력 계발을 목표로 하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과 함께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은 내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2학년, 고교 1학년 전체로 확대된다. 2015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3학년, 고교 2학년에도 적용된다.
스토리텔링 수학을 위한 수업방식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초등학교 1·2학년 수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스토리텔링 수학의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학년 1학기 수학교과서 ‘여러가지 모양’ 단원에서는 교과서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교실의 물건을 정리하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직육면체, 원기둥, 구 등의 모양을 찾고 분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2학년 1학기 ‘길이재기’ 단원을 배울 때는 임금님이 생일날 입을 옷을 재단하는 과정에서 길이를 재는 보편 단위인 센티미터(㎝)의 필요성과 개념을 알게 된다. 개미의 생태를 관찰한 이야기를 읽은 뒤 개미의 종류와 하는 일, 개미집의 형태 등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분류의 개념, 양(量)의 측정 등 방법을 배우는 내용도 있다.
개념의 원리와 배경, 사례를 소개하는 비중이 늘어난 만큼 새 수학 교과서에는 기존에 비해 학습해야 할 내용이 20% 정도 줄었다. 난이도도 다소 낮아져 불필요한 심화과정 문제는 사라졌다. 문제 해결력, 추론, 의사소통 능력 등 수학적 과정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수학적 사고와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정답을 찾아야 하는 단답형 문제 대신 탐구과정을 설명하도록 하는 서술형 문제가 늘어나면서 학생들은 정답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왜 그 답이 나왔는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과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문제를 해결한 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각 풀이단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스스로 교사가 돼 문제풀이 과정을 설명해 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스토리텔링 수학에 익숙해지기 위한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생활 속 수학적 요소를 가족과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연습이다. 부모와 함께 장을 보러 가서 계산하기, 아침에 마신 우유의 양을 계산하기, 학교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직접 측정하기 등 일상생활의 다양한 상황이 수학적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수학자의 위인전을 읽고 쓴 독후감, 관찰일기, 조사보고서 등 여러 형태로 수학 글쓰기를 연습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스토리텔링 수학 교육이 시작되면서 사교육 시장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대형 서점 문제집 코너에서는 ‘사고력 증진 수학’을 제목으로 내세운 문제집이 가장 잘 팔리고 출판사마다 스토리텔링 수학 대비를 위한 참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 윤성식(39)씨는 “스토리텔링 수학이 도입된다고는 하지만 고학년을 대비하기 위해 문제풀이식 수학도 학원이나 학습지로 따로 연습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저학년 단계에서 처음 시작되는 스토리텔링 수학이 고학년과 입시를 코앞에 둔 고교 단계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도 높다.
서울시내 한 고교의 수학교사는 “지금과 같은 수능체제가 유지되는 한 수학은 문제풀이 위주 수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고교의 모든 교과 수업은 입시대비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맞춰 가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에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2013-02-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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