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두고 원정마다 다섯 켤레씩 챙겨와 나눠준다고
종료 버저가 울리면 코비 브라이언트(37·LA레이커스)의 농구화에 서명을 받기 위한 ‘사냥’이 시작된다. 상대 팀 선수도 이 순간은 팬으로 돌변한다. 심지어 ´킹´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도 동참했다.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는 브라이언트가 요즈음 연일 경기 종료 뒤 팬으로 바뀐 선수들에게 자신의 서명이 담긴 농구화를 건네느라 분주하다고 ESPN이 30일 전했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지난 3일 덴버와의 경기 도중 즉석에서 서명을 남긴 운동화를 팬들에게 건네고 있다. AP 연합뉴스
브라이언트는 수많은 이들과 사진 찍고 사인해주고 손을 맞잡았는데 그 중에는 유타에서 은퇴한 안드레이 키릴렌코도 포함돼 있었다. 브라이언트는 후드를 보더니 “오~~ 보이! 오늘밤 펄펄 들끓었어(Cooking with gasoline tonight)!”라고 소리쳤다. 결국 후드는 들고 있던 스니커즈에 대선배 사인을 받아내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일종의 의식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브라이언트는 올 시즌 상대 선수들이나 심지어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 서명을 담아 건넨 신발이 적어도 서른 켤레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원정 때 다섯 켤레쯤 들고 가고 한 번은 일곱 켤레를 들고 갔는데 워낙 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털어놓았다. 이름만 적는 게 아니라 메시지도 적어넣는다. 드레이몬드 그린(골든스테이트)에게는 “역사를 만들라(Make history)!”라고, 토니 앨런(멤피스)에게는 “내가 만난 최고의 수비수!”라고, 케빈 듀랜트(오클라호마시티)에게는 “위대해져라(Be the greatest)”고 적었다.
그의 서명이 담긴 신발을 받은 이로는 폴 조지(인디애나)와 제임스,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트레버 아리자(휴스턴)와 캐런 버틀러(새크라멘토)를 비롯한 수많은 현역 NBA 선수들이 있다. 최근에는 자신을 만나러 피닉스 훈련 장소로 찾아온 미국프로풋볼(NFL) 애리조나의 와이드리시버 래리 피츠제럴드도 서명이 담긴 한 켤레를 얻어냈다.
자신의 애완견 이름 ‘크루시오’를 맞힌 두 꼬마 팬에게 서명을 담은 신발을 넘기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서커스는 레이커스의 라커룸 안, 브라이언트가 피로를 푸는 동안 벌어진다. 선수들이 경기 뒤 코트나 라커룸 등에서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데 듀랜트 같은 스타도 조금은 겸연쩍어한다.
듀랜트는 “이봐, 누구에게도 얘기하면 안 돼. 나약한 남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썼다. 덴버의 신인 에마뉘엘 무디아이는 브라이언트를 만나고 나니 어땠느냐는 질문에 “울뻔했어요”라고 답했다. 존 월(워싱턴)은 “엄마도 (제가 브라이언트를 만나는 장면을) 지켜봐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보통 원정 때는 적어도 한 명, 어떤 때는 세 경호원의 경호를 받는데 브라이언트는 열 발자국 내딛으며 10분쯤 걸린다고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브라이언트는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페니 하더웨이와 나중에 레이커스 동료가 된 샤킬 오닐 등의 서명을 받은 기억이 뚜렷하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샤크를 만났을 때 정말 최고였죠. 열다섯 살 때로 기억하는데 그는 내게 정말, 정말 좋은 선수였어요. 페니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선수 경력의 나머지 시간에 해내야 할 일은 이런 거죠.”
그래서 브라이언트는 모든 것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팬의 운동화에 남겨진 서명이 어떤 의미인가를 알고 있고, 이제 매일 밤 자신의 운동화를 건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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