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대통령도, 장관도, 공직자도 아니었다. 실적도, 기술도, 검증된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180억원의 대기업 투자를 끌어올 수 있었다. 카카오, 키움, 증권금융, HS효성 등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이들이 ‘그의 회사’에 줄을 섰다. 왜일까. 정답은 단순하다. 그는 김건희 여사의 ‘집사’였기 때문이다.
공식 직함은 없지만 김 여사의 일정에 동행하고, 메시지를 중계하며, 외부 인사와의 접촉을 연결했다. 그 어떤 공직자보다 빠르고 직접적이었다. 그는 대통령 배우자라는 권력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고, 그것이 곧 투자처에 대한 ‘보증수표’로 작용했다. 2016년 우리는 그 이름을 ‘최순실’이라 불렀고 2025년의 이름은 ‘김모씨’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스타트업 투자가 아니다. 김씨는 사모펀드 운용사와의 연결을 통해 대기업 자금을 유입시켰고, 그중 일부를 자신이 실질 지배한 또 다른 법인으로 옮겼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과거 최순실이 ‘K스포츠재단’을 내세워 대기업들에 출연을 강요했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모금’이라는 말 대신 ‘투자’라는 포장만 덧씌워졌을 뿐 핵심은 같다. 권력에 접근 가능한 통로를 가진 개인이 그 위치를 자산화했다는 점에서다.
김건희 특검은 기업들이 왜 그에게 줄을 섰는가에 초점을 맞춰 자금 흐름과 대통령 부부와의 관계 실체를 추적 중이다. 김 여사와 김씨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 사실상 ‘경제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점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공적 권력이 사적 네트워크와 결합해 체계적 이익 구조를 만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권력 주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떻게 국가를 흔들 수 있는지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비선의 유혹’ 앞에서 스스로 경계를 허무는 순간 그 권력은 더이상 공공의 것이 아니다. 최순실 사태가 보여 준 교훈은 오늘도 유효하다.
오일만 논설위원
2025-07-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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