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삶의 두 중심축인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 쓸 계획””기술전문가 아닌 작가 등 인문주의자가 세계를 구할 것으로 확신해””’붉은 유토피아’가 작품 테마’붉은 인간’ 아직 살아 있어”
“세계를 구할 사람은 기술전문가나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작가를 포함한 인문주의자라고 확신한다.”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는 17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시내에서 연합뉴스와 한 단독 인터뷰에서 “인문주의자는 세계에 발전의 다른 목적을 제시하는 사람이며 새로운 자동차와 로켓, 구축함 등을 개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지금까지 소비에트식 인간형인 ‘붉은 인간’과 평등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던 ‘붉은 유토피아’ 등의 사회주의적 허상과 불합리에 대한 작품을 써왔지만 이제 이 테마에 대한 글은 충분히 쓴 만큼 앞으로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축인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알렉시예비치와의 일문일답.
-- 수상 소감은. 수상을 예상했었나.
▲ 노벨 문학상은 모든 작가에게 환상적인 최고의 상이다. 노벨상을 받은 뒤 이제 다 이뤘다며 더는 글을 쓰지 않는 작가가 있다는 글도 읽었다. 이반 부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 러시아 노벨상 작가는 있었지만 벨라루스에선 처음이다.
계속 후보로 거론돼와 은연중에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상을 받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에도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에야 수상 소식을 알게됐다. 환상적인 일이었다.
-- 당신의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2011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미래의 연대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제목을 붙이면서 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부터 사람들이 교훈을 얻으리라 생각했다.
이 책이 일본어로 번역돼 나왔을 때 홋카이도를 방문해 원전 근무자와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원전 사고는 소련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진 등 모든 재난에 대비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우리는 대지진으로 불과 15분 만에 첨단 문명이 쓰레기 더미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자연을 모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인간의 가능성은 자연에 비교할 때 초라한 것이다. 처음으로 체르노빌 사고 원전을 방문했을 때 이제 과학 숭배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진국인 일본에서 또 다른 사고가 난 뒤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원자력은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원자력을 완전히 통제할 능력이 없다. 물론 현재로선 원자력 없이는 살수가 없지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될 것이다.
-- 1985년 나온 첫 작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던 날 한국어로 출간됐다. 작품의 메시지는.
▲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작품이다. 여성의 시각에서 본 전쟁의 실상을 담았다.
2차 대전에는 약 100만 명의 소련 여성이 보병, 포병, 저격병, 의사, 간호사 등으로 참여했다. 게릴라전에 참전했던 여성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종전 뒤 남성들은 여성들이 전쟁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전쟁은 남성들의 것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여성들은 주위에서 이상한 시선을 받았고 자신들이 세운 공적에 대해 침묵했다.
하지만 내가 참전 여성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들의 시각은 남성들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돼 있지 않았다.
여성들은 전쟁을 살인으로 받아들였다. 생명을 주는 존재인 여성은 왜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이러한 여성들의 태도가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줬다.
-- 2차 대전으로 옛 소련이 수천만 명의 목숨을 잃었다면 한국은 분단의 고통을 안게됐다.
▲ 한반도가 한때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남북한이 통일될 것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21세기에 모든 독재자는 망하게 돼 있다. 일시적으로 발흥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멸망하게 돼 있다. 어쨌든 21세기는 ‘자유의 세기’다.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의 독재에 대한 미신을 믿지 않는다. 독재를 극복하려는 저항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도 언젠가는 통일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통일이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 21세기가 자유의 세기라고 하지만 일부 국가에선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데.
▲ 나는 30년 동안 소련 시절의 ‘붉은 문명’에 대해 글을 썼다. 아름답게 보였던 평등주의 사상은 재앙적 실패로 끝났다. 인민은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러시아는 섣부른 공산주의 실험을 하면서 수백만 명의 삶을 바쳤다.
공산주의 사상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이상한 현상이지만 현재 러시아에선 사회주의 사상이 젊은 층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정직하지 못한 자본주의에 대한 실망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불과 몇%의 사람들이 모든 국부를 차지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뒤섞인 과도기를 겪고 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이럴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가 ‘러시아여 일어나라. 위대한 러시아가 부활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을 때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시당하고 있고 주변엔 온통 적뿐이다’거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강한 군대와 함대’라는 식의 연설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소련 정부가 70년 동안 외쳤던 것과 비슷한 구호들이다. 러시아는 실제로 석유와 가스를 판 돈을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 썼다. 전 세계가 러시아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진영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이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길이다.
-- 고은 등 한국 작가들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아직 수상하지 못했다.
▲ 작가에게 조언이란 있을 수 없다. 자기 방식으로 쓰면 된다.
내겐 1917년에서 1991년까지 살았던 옛 소련식 인간형인 ‘붉은 인간’과 ‘붉은 유토피아’에 대한 예술적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이 글쓰기의 목표였다. 어떻게 사회주의가 사람들에게 왔고 사람들이 어떻게 이 사상으로 살다가 마침내 그것을 거부하게 됐는지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가 왜 위대하고도 무서운지에 대한 탐구이기도 했다.
1940년대 히틀러와 맞서 싸운 사회주의는 위대했다. 하지만 붉은 인간은 그렇지 못했다. 어떤 작가가 집단수용소(라게리)에서 수천만 명이 죽었다면 누군가가 수천만 장의 밀고장을 쓴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올바른 것이다. 이들이 붉은 인간이다.
소련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집단수용소식 사고와 붉은 인간은 남아있다. 내가 크림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분쟁과 관련한 푸틴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하자 나는 곧바로 러시아의 적이 됐다. 이는 아직도 모든 사람을 적이 아니면 우리 편, 모든 사물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붉은 인간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내가 붉은 인간에 대한 예술적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 몰두했듯 한국의 역사와 삶도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것으로 믿는다. 모두가 자기 방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수상의 영예를 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어떤 작가나 작품을 좋아하나. 작품 형식이 독특한데.
▲ 다큐멘터리 예술작품을 특히 좋아한다. 물론 전통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전통문학이 따라가기엔 세계는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최근에 만해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시리아 난민 등 숨 가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문학은 이런 삶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
‘목소리 소설’로 불리는 나의 문학 장르는 여러 인간의 작은 역사를 모으면 시대의 초상화나 형상이 만들어진다는 깨달음에서 태어났다. 이런 형식이 좀 더 역동적이고 시대를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70~100페이지의 인터뷰에서 겨우 반 페이지 정도가 책에 남기도 한다. 700~800명을 인터뷰한 것에서 하나의 심포니가 만들어진다. 복잡한 사건 더미에서 정신을 찾아내는 어려운 작업이다.
-- 많은 이들이 인문학의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 이 시대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 나는 세계를 구할 사람은 기술전문가나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인문주의자라고 확신한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 개발한 기술로 문명과 인류를 파괴할 수 있게 됐다.
인문주의자는 세계에 발전의 다른 목적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동차와 로켓, 구축함 등을 개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기술전문가와 이성적 인간은 아이폰에 들어 있는 ‘시리’(Siri) 같은 존재다. 내가 질문을 하면 답한다. 하지만 시리에게 ‘사랑이 뭐야’와 같은 질문을 하면 ‘그런 답은 프로그램에 저장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기술적인 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기술 숭배는 지난 세기의 사상이다. 훌륭한 문학가들이 인문주의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결실이 있을 것으로 본다.
--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 ‘붉은 인간’에 대한 내 생각은 충분히 썼다.
인간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서 이제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축인 사랑과 죽음에 대해 쓰려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버리더라도 삶, 사랑과 죽음의 테마는 남는다. 누구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이 두 가지 화두가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의학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20년 정도나 길어졌지만 늘어난 이 삶을 어떻게 살지를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사랑 얘기를 듣고 있다. 사랑의 테마는 행복해지고 싶지만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 어떻게 하면 존엄하게 죽을 수 있을까 등에 대한 테마에 대해서도 준비 중이다. 모두 존재론적 질문이다.
글쓰기 형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심포니로 담아내는 ‘목소리 소설’을 유지할 것이다.
-- 최근 벨라루스 대선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5선에 성공했는데.
▲ 나는 투표하러 안 갔다.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루카셴코가 이길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야권 후보에겐 기회가 없었다. 안타깝지만 야권은 분열돼 서로 싸우고 있다. 서로 싸우기 때문에 강력한 정치인도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보는 국민이 야권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약한 야권은 국민에겐 비극이며 루카셴코에겐 희극이다.
루카셴코가 이번 선거에서 83% 이상을 득표했다는 공식 발표는 믿을 수 없지만 50% 이상의 국민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이웃 우크라이나의 정치 혼란을 부각시키며 벨라루스의 정치·사회적 안정과 평화를 약속했다. 다수 국민은 TV로 반복해 전해지는 그의 말을 믿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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