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석기시대】데트레프 간텐 외 지음 중앙북스 펴냄
정글에서 갈기 곧추세운 수사자와 마주쳤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당신은 화들짝 놀랄 게다. 그때 당신의 표정을 그려 보자. 눈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치켜뜨고, 입과 콧구멍 또한 한껏 벌린 상태가 된다.이번엔 썩어 가고 있는 동물 사체를 목격했다. 그때 당신 표정은? 코를 잔뜩 찡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런 행동들의 이면엔 생존을 위한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땐 눈을 크게 뜨고 콧구멍을 벌려야 더 많은 시각 정보와 냄새 정보를 받아들여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반대로 썩은 사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콧구멍을 좁힌 채 시선을 돌리는 것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반사작용이다.
이처럼 인간의 몸이 외부 작용에 반응하는 양식은 모두 자연 선택의 결과다.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하면서 어떤 특질들은 보존되고 어떤 특질들은 사라졌다. 즉 현재 우리 몸은 환경에 부단하고도 긴 적응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자연사(史)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엘리트다. 그해 번식에 성공한 가장 우수한 자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몸은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불필요한 듯 보이는 사랑니와 맹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자 몸 속의 산도(産道)는 고통 없이 출산할 수 있을 만큼 넓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우리 몸은 석기시대’(데트레프 간텐·틸로 슈팔·토마스 다이히만 지음, 조경수 옮김, 중앙북스 펴냄)는 진화론을 한가운데 놓고 현대인의 건강과 질병 문제를 짚어 본 교양과학서다. 책은 우리 몸의 불완전성에 대해 지구상의 생명 발달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진화의 결과물인 인간의 몸도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우리의 행동과 생활양식은 변했지만 우리 몸은 아직 2만년 전 석기시대 그대로라는 얘기다. 그러니 ‘몸과 환경의 마찰음’은 당연할 수밖에 없으며, 질병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진화의학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의학 교수와 생명과학 담당 저널리스트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암을 비롯한 비만·고혈압·당뇨병 등 각종 질환과 진화의 연결고리를 자세하게 그려 놓고 있다. 비듬·대머리·털·피부·비타민 등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기존 의학상식을 뒤집는 내용들도 많이 담겼다. 아울러 최근 의학계 동향을 쉽게 풀어내 의학 문외한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게 했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1-02-08 2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