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움직인다/손택수 지음/창비/140쪽/1만 3000원
‘어떤 슬픔…’ 이후 3년 만에 신작사소하고 지루한 일상서 애정을
낮은 존재 향한 사랑·연민 발견
“슬픔의 역동성 통해 연대 희망”

서울신문 DB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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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에서 “재주라곤 슬퍼하는 능력밖에 없”다고 고백하던 손택수(55) 시인은 3년 만에 슬픔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길어 낸다. 새 시집 ‘눈물이 움직인다’에서는 슬픔이 ‘수동’이 아니라 ‘능동’임을 포착한다.
시 ‘밥풀로 붙인 편지’에서 시인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으니/ 눈물이 움직인다//말라붙은 풀을 다시 쑤고 있다”며 슬픔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눈물은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한번 더 슬픔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기꺼이 흔하디흔한 돌에 온기를 나누고(“돌을 쥔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온기가 있다/나의 체온이 건너간 것이다/건너간 것이 체온만은 아니어서/떠나는 거 서운치 않게, 지는 해를 따라가서/민박집에 주저앉았던 옛일도 떠오른다”) 이미 멈춘 심장에 귀를 댄다(“그 자세 그대로 가슴팍에 귀를 대고 당신의 멈춰버린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 옛날 산 너머 강 너머의 먼 바퀴 소리를 당겨 듣던 소년처럼”).

워너클래식 제공
비운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1945~1987)는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겪으면서 육신의 고통,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게 되자 “어떻게 하면 이 삶을 견딜 수 있죠?”라는 질문을 남겼다. 손택수 시인은 그의 연주가 시를 쓸 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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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소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일상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시 ‘운석 찾는 사람’에서 읊조린 것처럼 “반복되는 이 지루한 날들이 다시는 올 수 없는/천체의 일인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눈과 귀를 가진 시인이기에 낮고도 낡은 것을 노래할 수 있다. 과거 선친이 손수 만들었던 낡은 의자에 시선을 멈추고(“부식된 못이 염려스럽고/삭은 나무들에 마음이 아려오는 건/사물에 영혼을 입히는 당신들 때문이겠지/의자는 이제 의자만은 아니라서/삐걱, 소리도 무슨 긴한 신호인가만 싶다”) 무심결에 지날 수 있는 도심 속 풍경도 놓치지 않는다(“무슨 험한 일을 당했는지, 발이 뭉툭한 비둘기가 기우뚱/기우뚱거리는 걸 그냥 보기가 영 힘들어진다”, “개업과 폐업은 이 거리의 일상이 되었으나/기다린다 빵 나오는 시간을,/시간도 반죽이 되어 빵틀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거리를//안내판만 내어놓고 몇 주째 문이 닫혀 있는 빵집/가끔씩 소보로빵을 덤으로 끼워주던 그 사내를”).
낮은 존재를 향한 사랑과 연민 노래는 누구보다도 그 슬픔을 오래 생각하고 바라봤음을 짐작케 한다(“누구나 한번은 고아일 때가 있지/고아끼리 손을 잡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오지/해변 파출소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몰래 머뭇거린다/내가 잠시 고아였을 때, 꼭 잡고 있다 놓아버린 손/어쩌면 내가 그 어미가 되어서”).

단순히 슬픔을 노래하는 것, 슬픔에 동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슬픔에서 가능성을 발견해 내는 것. 이 지점이 그의 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시인은 슬픔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그게 슬픔이고 아픔이지만/그런데 알아/그게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거”)하고 사라질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짓는 일’이 숭고함을 이야기한다(“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손 시인은 29일 “지난 시집이 소외된 슬픔에 주목했다면 이번 시집은 슬픔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에 주목했다”며 “일상의 습관에 주저앉지 않게, 빛나는 지점들을 찾아내 마침내 연대하는 그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힘줘 말했다.
2025-05-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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