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자 아이돌의 아버지’ 자니 기타가와 별세

일본 ‘남자 아이돌의 아버지’ 자니 기타가와 별세

김태균 기자
입력 2019-07-10 15:46
수정 2019-07-10 15:4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자니 기타가와 자니스사무소 대표의 별세 소식을 10일 조간에서 일제히 1면 톱기사로 다룬 일본의 스포츠·연예매체들. AFP 연합뉴스
자니 기타가와 자니스사무소 대표의 별세 소식을 10일 조간에서 일제히 1면 톱기사로 다룬 일본의 스포츠·연예매체들.
AFP 연합뉴스
‘스마프’(SMAP), ‘아라시’ 등 일본의 ‘국민 아이돌’을 배출하며 ‘연예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려 온 자니 기타가와 자니스사무소 대표가 지난 9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87세.

193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기타가와는 10대 시절 현지에 방문한 당대 최고의 일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통역을 맡으면서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미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 일본에서 밴드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코치를 맡고 있던 소년야구팀 ‘자니스’의 멤버들을 모아 1962년 자니스사무소를 설립, 연예기획 사업을 시작했다. 남성 4인조 그룹 자니스를 시작으로 ‘스마프’, ‘아라시’, ‘토키오’, ‘캇툰’ 등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을 길러냈다.

스마프의 기무라 다쿠야, 초난강(구사나기 쓰요시) 등 소속 연예인들이 가수뿐 아니라 배우, MC 등으로 폭넓은 활약을 하면서 기타가와는 명실공히 일본 연예계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했다. ‘가장 많은 1위 싱글 음반’, ‘가장 많은 콘서트 프로듀스’ 등의 주인공으로 3개 부문에 걸쳐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남자 어린이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추문에 휘말리기도 했다. 본인은 기사를 보도한 주간지를 고소해 손해배상을 받기도 했지만 항소심에서 뒤집히는 등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 그는 얼굴을 비롯해 자신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인의 허락 아래 촬영된 유일한 사진은 2012년판 기네스북에 등재되면서 찍은 것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