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 치유에 헌신하는 허근 신부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넘기 힘든 장벽을 만날 때 주저앉거나 삶 자체를 포기하곤 한다. 그와는 반대로 난관을 딛고 다시 우뚝 설 때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귀감으로 새겨진다. 더욱이 자신의 역경을 남을 위한 희망과 배려로 승화시킨다면 어떨까.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근(58) 신부는 바로 나락의 고비를 희망과 배려의 가치로 승화시켜 사는 사제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가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 치료에 몸 바치며 사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변함없이 “사람이 바로 희망”이라고 말한다.지금 그에게 따라붙는 타이틀은 하나같이 묵직하다. 사단법인 한국바른마음바른문화운동본부 이사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단중독(斷中毒)사목위원회 위원장,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 소장…. 그 타이틀은 바로 그가 살아온 궤적의 극적인 반증이다.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로 오랜 세월 살다가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 치료에 열과 성을 다 쏟으며 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근 신부.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중독은 생명공동체를 가장 먼저 허무는 으뜸 해악이라고 강조한다.
●1998년 입원해 알코올중독 치료 경험
1980년 사제 서품을 받아 서울 돈암동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줄곧 가난하고 어려운 동네의 성당에서 사목했던 허 신부. 삶이 괴로워 술로 시절을 달래며 사는 신자들과 어울려 술을 시작했고 1998년 결국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까지 ‘알코올 중독자’로 살았단다. “아침 해장술로 시작해 점심, 저녁까지 술을 마셔 댔으니 미사조차 건사하지 못할 정도였지요. 그저 술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좋아 마셨을 뿐이지 그 해악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병원 신세를 지고 단주하면서 허물어진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고서야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는 허 신부는 “알코올 중독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게 치료의 첫 수순”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물론 그 인정에는 주위의 배려와 관심이 아주 중요하단다.
●알코올사목센터서 중독자들 회복시켜
“사람은 성취해도 또 다른 욕망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런 욕망이 공허함과 불안감을 낳고요. 그 공허함과 불안감의 도피처로 삼는 현상이 바로 중독인 셈이지요. 누구나 그런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제의해 체결한 ‘주폭(酒暴) 척결 및 음주 문제자 치료와 예방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허 신부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알코올 문제의 해결은 단속과 처벌이 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중독자들의 회복이 문제라는 MOU의 바탕에는 바로 13년째 알코올사목센터를 이끌고 있는 허 신부가 있다. 경찰이 종교적 인성의 회복과 치유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종교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인 구원에 앞서 더 소중한 게 생명입니다. 중독에 빠져 살면 결국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게 되니 종교가 아무리 생명공동체를 외쳐 봐야 헛된 일 아닐까요.” ‘마음만 먹으면 (중독을) 끊을 수 있다.’는 중독자들의 변명은 공허한 것일 뿐 의지와 감정, 그리고 지능까지 차례로 허물어진 중독자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1년간 병원 신세를 진 뒤 몸만 사제일 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여생을 나처럼 중독 병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바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후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를 이끌어 왔고, 해마다 중요한 날이나 계기에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받는 중독자들을 위해 책을 펴내거나 작은 선물을 세상에 돌려주었다는 허 신부. “오는 24일은 ‘알코올 중독자의 회복을 위한 단기 통합프로그램 개발과 효과성 평가’라는 타이틀로 박사 학위를 받는 날입니다.” 공교롭게도 박사 학위 받는 날이 세례를 받은 세례명(바르톨로메오) 축일과 겹쳤다며 환하게 웃는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2-08-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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