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고에 뻗은 평화의 예술… 反戰의 반전

탄약고에 뻗은 평화의 예술… 反戰의 반전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8-08-15 17:44
수정 2018-08-1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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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싹 틔운 사슴의 뿔· 희망의 놀이터 등
안보 역사의 체험 넘어 창작 공간으로
캠프그리브스 탄약고 안에 자리한 사슴(왼쪽)이 무성한 나무처럼 뿔을 펼치며 관람객을 압도하고 있다. DMZ 평화정거장 예술창작전시 가운데 김명범 작가가 ‘탄약고 프로젝트’로 선보인 작품 ‘플레이그라운드’로, 다른 탄약고 한곳에는 남과 북의 현실을 은유하는 미끄럼틀(오른쪽)이 놓여져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캠프그리브스 탄약고 안에 자리한 사슴(왼쪽)이 무성한 나무처럼 뿔을 펼치며 관람객을 압도하고 있다. DMZ 평화정거장 예술창작전시 가운데 김명범 작가가 ‘탄약고 프로젝트’로 선보인 작품 ‘플레이그라운드’로, 다른 탄약고 한곳에는 남과 북의 현실을 은유하는 미끄럼틀(오른쪽)이 놓여져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장면 1. 낙엽 더미 위에 곧게 선 사슴을 보자니 시선이 자꾸 위로 쏠린다. 기세 좋게 뻗어나간 뿔은 사방팔방으로 가지치기가 한창이다. 사슴은 박제된 채로 한자리에 못박혀 있지만 사슴의 뿔만은 생명력 넘치는 나무가 되어 공간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환상으로 이끈다. 아무도 오고 가지 못하는 비무장지대(DMZ)를 ‘교집합의 공간’, ‘초현실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예술작품이다.

#장면 2. 문 위 녹슨 도르래를 감아올리자 수풀에 웅크려 있던 탄약고가 조금씩 뱃속을 드러낸다. 폐허일 거라 여겼던 공간 안에서 난데없이 미끄럼틀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쟁의 재료로 무장하고 있던 공간이 때아닌 유희의 공간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 신나게 타던 미끄럼틀은 낡았지만 ‘올라 오라’고 ‘미끄럼을 타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하지만 양 갈래로 갈라진 미끄럼은 한쪽이 벽면에 막힌 채로 서로 오갈 수 없는 남과 북의 현실을 씁쓸하게 비춘다.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 떨어진 캠프그리브스.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반세기 넘게 미군이 머물렀던 이곳은 1950~1990년대 미군 부대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축적돼 있어 괜히 긴장되고 위축되는 장소다. 2016년 방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연간 3만명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캠프그리브스 탄약고에 펼쳐진 김명범 작가의 ‘플레이 그라운드’(사슴과 미끄럼틀)처럼 이곳은 요즘 전쟁과 분단의 상흔을 지우고 경계 없는 예술의 상상력으로 평화를 싹 틔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이끄는 프로젝트 ‘캠프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의 핵심 프로그램인 예술창작전시를 통해서다.

이은경 DMZ 평화정거장 예술총감독은 “예측하지 못하는 장소에 반전을 이룬다는 콘셉트로 예술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다”며 “안보 역사 체험의 공간에 머물던 DMZ를 미래지향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라고 소개했다.

탄약고뿐 아니라 정비고, 볼링장, 퀀셋 막사 등 캠프그리브스 곳곳에 자리한 17개 예술작품은 최근 급변한 남북관계처럼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 이해와 포용, 화해로 나아가는 우리 현실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비춘다. 박성준의 ‘YOUR FLAME Ⅱ’는 전쟁의 공포를 경험하게 하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다. 10여명의 관람객이 들어가면 새가 지저귀던 평화의 공간은 암흑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귀를 때리는 폭격음, 이라크전 영상 등으로 진저리치게 되는 전쟁의 공간으로 변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8-08-1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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