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다듬이 소리

[속삭임] 다듬이 소리

입력 2010-03-07 00:00
수정 2010-03-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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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다. 우두커니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여직원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창문 너머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내리는, 눈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처진 어깨선에서 가늠할 수 없는 수심이 느껴진다. 그리움인지 외로움인지 알 수 없는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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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무슨 생각을 했을까? 늘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키우고 섣불리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 번도 끝에 닿지 못한 그리움의 깊이 때문일까?

함박눈이 내리던 밤 담장을 넘어오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아름답고 슬픈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호롱불이 만들어낸 실루엣 너머로 희미한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다.

토닥 토닥 탁, 탁, 탁

빠르게 느리게 슬프게 때론 아프게, 악보도 없이 그 오랜 시간을 제각기 다른 느낌으로 어둠을 흔들던, 끈긴듯 끈긴듯 이어지던 음과 음, 그 사이에 잠시 소리를 놓으시고 가느란 숨을 쉬셨을까? 장독 위에 쌓이는 눈 소리에 고단한 귀 기울이셨을까?

다듬이는 내 기억의 가장자리에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눈이 오는 날이면 기억의 용마루를 넘어오는 다듬이 소리가 환처럼 들린다. 눈과 다듬이 소리가 어우러진 늦은 겨울밤의 기억이 오랜 먼지를 털고 색바랜 흑백사진으로 인화된다. 지천명을 살면서 그보다 진한 감동의 연주회가 있었을까?

어머니는 내 그리움의 중심에 있지만 늘 기억의 가장자리에 남아 눈이 내릴 때마다 속삭이듯 찾아오는 다듬이 소리처럼 슬프다. 창 밖에는 몇 시간째 눈이 내리고 있다. 여직원이 섰던 자리, 눈 쌓인 그 자리가 허허롭다.

글_ 문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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