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 아들 앞에서 살해된 엄마…26년뒤 잡힌 범인은 ‘남편 동창’ [이런 日이]

두살 아들 앞에서 살해된 엄마…26년뒤 잡힌 범인은 ‘남편 동창’ [이런 日이]

윤예림 기자
입력 2025-11-03 06:00
수정 2025-1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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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시 주부 살인사건’
26년 만에 잡힌 범인…남편의 고등학교 동창
빈집 월세 내며 현장 보존한 남편…“이유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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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1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해된 나미코(당시 32세). 나미코의 시신 근처에는 두 살짜리 아들 고헤이(사진 왼쪽)가 있었다. 니혼TV 캡처
1999년 11월 1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해된 나미코(당시 32세). 나미코의 시신 근처에는 두 살짜리 아들 고헤이(사진 왼쪽)가 있었다. 니혼TV 캡처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선생님의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가 체포됐어요. 26년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카바 사토루(69)는 지난달 31일, 경찰에게서 믿기지 않는 전화를 받았다. 26년 전 끔찍한 사고로 사망한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됐다는 소식이었다.

1999년 11월 1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한 아파트에서 다카바의 아내 나미코(당시 32세)가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나미코의 시신 근처에는 두 살짜리 아들 고헤이가 있었다. 다행히 고헤이는 무사했다.

경찰은 현관에 남겨진 혈흔의 DNA형 감정 등을 통해 ‘40~50대 여성, 키 약 160㎝, 신발 사이즈는 240㎜, 혈액형은 B형, 그리고 나미코를 공격할 때 손에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범인의 인상착의를 공표했었다.

그러나 수사는 나아가지 못했다. 대대적인 수사팀을 꾸린 경찰은 부부의 가족부터 주변인들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증거는커녕 뚜렷한 원한 관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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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1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해된 나미코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나미코, 아들 고헤이, 남편 다카바. 니혼TV 캡처
1999년 11월 1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해된 나미코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나미코, 아들 고헤이, 남편 다카바. 니혼TV 캡처


26년만에 체포…용의자는 ‘혐의 인정’그렇게 26년이 흐른 지난달 31일 오후 경찰은 나고야시에 거주하는 여성 야스후쿠 구미코(69)를 나미코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야스후쿠는 올여름 아이치현 경찰이 용의자 후보들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이다. 여름 이후 경찰은 야스후쿠를 상대로 여러 차례 임의 동행해 심문했다.

야스후쿠는 경찰의 DNA형 임의 제출 요구에 여러 차례 거부하다 최근 응했고, 지난달 30일 홀로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혐의를 인정했다. 감정 결과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혈흔에서 채취된 DNA형과 야스후쿠의 DNA형이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2일 오전 야스후쿠를 살인 혐의로 나고야지검에 송치했다. 그는 1999년 11월 나고야시의 한 아파트에서 나미코의 목 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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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범인의 몽타주가 포함된 범인 수배 전단지로, 최근 다시 만들어졌다. 왼쪽은 26년 전 그렸던 범인의 모습, 오른쪽은 나이가 든 모습을 추정해 그린 것. 아이치현경 홈페이지
사진은 범인의 몽타주가 포함된 범인 수배 전단지로, 최근 다시 만들어졌다. 왼쪽은 26년 전 그렸던 범인의 모습, 오른쪽은 나이가 든 모습을 추정해 그린 것. 아이치현경 홈페이지


범인은 ‘남편의 동창’…“영문을 모르겠다”야스후쿠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살해된 나미코의 남편 다카바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야스후쿠와 다카바는 같은 테니스 동아리에 소속돼 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다카바는 야스후쿠에 대해 “얌전하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던 기억밖에 없다”고 전했다. 사건 발생 약 1년 전쯤 야스후쿠를 테니스부 동창회에서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다카바는 “동창회에서 만난 지 약 1년 후에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용의자가) 제 지인이었기 때문에, 나미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빈집 월세 내며 ‘현장 보존’…남편의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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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코의 남편 다카바는 사건 현장이었던 아파트에 26년간 월세를 내면서 현장을 보존했다. 지금까지 지불한 집값은 2000만엔(약 1억 8580만원)이 넘는다. 사진은 현관 바닥에 남아있는 갈색으로 변색된 혈흔. 니혼TV 캡처
나미코의 남편 다카바는 사건 현장이었던 아파트에 26년간 월세를 내면서 현장을 보존했다. 지금까지 지불한 집값은 2000만엔(약 1억 8580만원)이 넘는다. 사진은 현관 바닥에 남아있는 갈색으로 변색된 혈흔. 니혼TV 캡처


“범인이 잡힐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게.” 아내 앞에서 맹세한 다카바는 정말로, 26년간 단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다. 사건이 잊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 취재에도 계속 응해온 그였다.

특히 다카바는 사건 발생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사건 현장이었던 아파트에 26년간 월세를 내면서 현장을 보존하는 데 애썼다. “범인과 연결되는 단서라는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불한 집값은 2000만엔(약 1억 8580만원)이 넘는다.

현관 바닥에 남아있는 갈색으로 변색된 혈흔을 보는 건 다카바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에게 엄마를 빼앗은 범인이 붙잡혀 현장 검증을 할 때까지 이대로 두자”고 결심했다.

다카바의 바람대로, 경찰은 1일 오후 야스후쿠의 입회하에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현장 검증에 동행한 다카바는 “열심히 월세를 내온 보람이 있다”며 “이제 이 방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이 자세히 조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눈물 흘리며 “감사”…공소시효 폐지에도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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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된 직후 언론과 인터뷰한 다카바의 모습. 그는 “26년간 저를 지지하고 지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니혼TV 캡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된 직후 언론과 인터뷰한 다카바의 모습. 그는 “26년간 저를 지지하고 지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니혼TV 캡처


다카바는 범인이 체포된 이후 지인들과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다. 아낌없는 축하를 받은 그는 “26년간 저를 지지하고 지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경찰은 26년간 나미코 사건을 수사하면서 총 10만 1000여명의 수사관을 투입했고, 5000명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경찰 수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다카바가 살인사건 유가족들의 모임 ‘소라노카이’(하늘나라의 모임)를 하면서 2010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기존 범죄에도 소급 적용이 돼 2014년까지였던 나미코 사건의 시효도 없어졌다.

경찰은 2020년 이 사건을 ‘수사 특별보장금’ 대상으로 지정해 사건 해결로 이어지는 유력 정보 제공자에게 최대 300만엔(약 2790만원)의 보상금을 내걸고 정보를 모으기도 했다.

“정말로 범인이 체포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지금은 무엇보다 (살해) 동기가 알고 싶어요.” 긴 세월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왔던 다카바는 이제 26년 염원의 마침표를 찍을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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